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린스턴 전투 (문단 편집) == 배경 == 1776년 12월 26일 [[트렌턴 전투]]에서 헤센군을 습격해 값진 승리를 쟁취한 워싱턴은 다음날 델라웨어 강의 서쪽 둑으로 철수했다. 그는 영국군이 장악한 뉴저지 주를 탈환하기 위해 며칠 내로 공세를 감행하려 했다. 얼마 후, 존 캐드월레이더 대령이 이끄는 펜실베니아 민병대는 델라웨어 강을 다시 건너 트렌턴으로 진군한 뒤 워싱턴에게 적이 사라졌다고 보고했다. 이에 워싱턴은 그의 군대 대부분을 뉴저지 주로 다시 이동했다. 그는 영국군이 트렌턴 전투 패배를 보복하려 들 거라고 예상하고 트렌턴 남쪽의 어순핑크 개울 건너편에 그의 군대를 배치하고 방어 태세를 갖췄다. 워싱턴은 영국군의 반격을 늦추기 위해 마티아스 알렉시스 로체 드 페르모이 준장에게 라이플 보병이 다수 포함된 그의 여단을 프리스턴 방면으로 내려가서 적의 진군로를 봉쇄하라고 지시했다. 그후 12월 31일이 되자 많은 부하들이 복무 기한 만료로 인해 군대를 이탈하려 했다. 그러자 워싱턴은 한 달만 더 있어달라고 호소하며 10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해줄 것을 약속했고, 병사들은 트렌턴 전투의 승리로 사기가 고양된 데다 자신들과 함께 동고동락한 워싱턴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기에 기꺼이 그러기로 했다. 한편, 트렌턴에 주둔한 헤센군이 와해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윌리엄 하우 소장은 격분했다. 그는 찰스 콘월리스 소장의 휴가를 취소하고 약 8,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반란군을 섬멸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델라웨어 강으로 향한 콘월리스는 프린스턴에 알렉산더 레슬리 준장 휘하 일부 병력을 남겨뒀다. 프린스턴에 도착한 알렉산더 레슬리 준장은 적군이 프린스턴에서 5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는 걸 파악하고 즉시 요격하려 했다. 이때 페르모이 준장이 술에 취해 지휘를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에드워드 핸드 대령이 대신 군대를 통솔했다. 그는 영국군과 짧은 교전을 벌이며 적의 진격을 지연시킨 뒤 1777년 1월 2일 오후 워싱턴과 합류했다. 워싱턴이 어순핑크 개울에 있다는 걸 확인한 콘월리스는 대륙군이 점령한 고지를 포위한 뒤 어둠이 깔리기 전에 다리를 점거하려고 세 차례 공세를 감행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윽고 어둠이 깔리자, 콘월리스는 군대를 철수시키기로 했다. 이에 부하들이 워싱턴이 밤에 탈출할 수 있다며 만류했지만, 콘월리스는 반란군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거라며 묵살했다. 워싱턴은 적이 물러가자 전쟁 위원회를 소집하고 그의 장교들에게 고지에 머물면서 계속 싸워야 할지, 강을 건너 철수해야 할지, 프린스턴을 기습 공격할 지를 물었다. 장교들의 여러 의견을 귀담아들은 워싱턴은 프린스턴을 공격하기로 결심하고 장교들에게 프린스턴으로 진격할 채비를 하라고 지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